언론으로 알린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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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09. 09. 청년의사
vkh  2010-07-05 10:32:37, 조회 : 4,608, 추천 : 634

청년의사 (2002년 9월 9일)

의료계 뉴스/인터뷰

정민석(아주의대 해부학 교수)

"의사가 꾸는 꿈... 만화로 된 해리슨"



상상해보자.

밤늦은 의대 도서관.

내일은 내과학 시험이 있는 날인데,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웃고 있는 녀석들의 책상 위를 보면, 형형색색의 그림이 빼곡한 만화책이 놓여 있다. 제목은 “해리슨 만화판”.

상권은 무협만화 스타일, 하권은 순정만화 스타일이라 여학생들은 하권을 더 재미있게 읽는 편이다.

그나저나 옛날에는 만화판 해리슨이 없었다던데, 선배들은 정말 재미없는 의대 공부를 했겠구나 싶다.

물론 위의 상황은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한 10∼20년쯤 뒤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해리슨을 만화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이 사람, 아주대 해부학교실의 정민석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3년 전에 해부학을 만화로 설명하는 진짜 만화책 한 권을 만들기도 했고, 해부학 소식지에는 ‘해랑선생’이라는 제목의 4컷 만화를 연재한 적도 있다.

의학만화를 그리는 의사, 아주대 해부학교실 정민석 교수를 만나봤다.

Q. 원래 만화를 좋아했나?

- 어려서 꿈이 만화가였다. 하지만 만화가가 되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바람에 의사가 됐다(웃음). 의대 가서도 만화가의 꿈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만화를 그렸다. 물론 ‘작품’ 수준은 아니고, 낙서를 끼적대는 정도.

Q. 만화그림은 본인이 직접 그렸나?

- 일반인을 위한 해부학 만화책은 스토리보드와 화면구성을 짜고, 덧그림까지는 직접 그렸다. 캐릭터는 전문 만화가가 삽입했다. 일종의 학습만화라고 보면 된다. 해부학 소식지에 실린 ‘해랑선생’은 그림도 직접 그렸다. 해부학자의 일상을 풍자한 명랑만화라, 농담의 수준이 좀 지독한 편이다.

Q. 왜 해부학 만화책을 만들게 됐나?

- 해부학은 정상인의 생김새를 공부하는 형태학적 학문이다. 그리고 형태학은 뭐든지 그림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해부학 수업시간에는 실물에 가까운 그림을 보면서 공부하지 않는가. 하지만 난 좀더 단순한 그림이라면 더 이해하기 쉽고, 이해한다면 외우기도 쉽고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 집을 찾아갈 때도 지도보다는 단순해도 보기 쉬운 약도를 보고 찾아가지 않는가. 약도는 만화(혹은 단순한 그림), 지도는 실물에 가까운 해부학 그림, 친구 집을 찾아가는 행위는 해부학실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어렵고 외울 것도 많은 해부학을 만화로 설명하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우선 그 첫걸음으로 정보통신부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간단한 해부학 만화책을 만들게 됐다. 아쉽게도 아직 정식으로 출판한 건 아니고, 학회에서 결과를 발표한 뒤 100부 정도를 제본해서 아는 사람들에게만 나눠줬다. 아, 그리고 현재 내가 나가는 간호대학 강의 부교재로도 사용하고 있다.

Q. 일반인이 해부학적 지식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 물론이다. 일반인이 해부학을 이해하면 의사가 설명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환자가 자기 병과 자기 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건 의사에게도 좋은 일이다. 자기 병을 이해하는 환자는 의사의 말도 잘 듣기 때문이다.

Q. 그림을 그리면서 강의를 한다던데?

- 교수님들마다 강의하는 방법이 다른데, 난 강의실에 그 흔한 슬라이드나
책 한 권 없이 빈손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단순한 만화형태의 그림을 칠판 가득 그려놓고, 학생들에게 따라 그리게 한다. 그 다음에 설명한다. 최대 4시간 정도 되는 강의도 책 한 권 없이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림이니까 외우기 쉬운 거다. 글자라면 그렇게 못 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본다. 외국속담에 ‘그림 하나가 백 개의 문장보다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사실적인 그림과 만화적인 단순그림, 두 가지를 다 보며 공부하면 금상첨화다.

Q. 만화책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

- 해부학 학회에서 발표를 했었는데, 덤덤했었다. 뭐, 물론 대놓고 뭐라고 하는 분은 없지만 돌아서서 욕하는 의사들도 더러 있긴 했다. 단순화 과정에서 생략된 내용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말이다. 가령, T림프구, B림프구와 관련된 얘기를 최대한 간단하게 다뤘는데, 일반인들이 면역반응에 대해 오해할 수 있다며 시비를 걸더라. 하지만 만화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를 아껴주시는 분들은 “정민석이는 만화그릴 시간에 연구를 좀더 해야 돼”라고 충고하시기도 한다(웃음). 옳은 말씀이긴 하다. KBS TV 특강 프로그램에 나가서 만화를 이용하여 해부학에 대한 개괄적인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일반인들의 반응은 좋았던 것 같다. 쉽고 재미있었다는 평.

Q. 의학의 ‘엄숙주의’와 만화가 잘 어울린다고 보나?

- 사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흡사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만화는 재미있어야 되기 때문에 농담을 좀 집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재미가 지나치면 사람생명을 경시하는 것처럼 될까봐 두려웠다. 또 나아가서는 관련된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이 자신이 농담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너무 재미없는 얘기만 하자니, 만화로서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Q. 만화책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쉽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웠다. 그렇다면 쉬운 게 뭐냐…, 한마디로 논리적인 게 쉬운 거다. 논리적인 것은 또 뭐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음담패설도 문장과 문장이 인과적으로 죽 이어지니 재미있는 거다. 해부학 만화를 그릴 때도 한 계통에서 이야기를 죽 이어나가려고 책도 많이 보고, 무진장 애를 썼다.

Q. 앞으로도 만화를 계속 그릴 계획인가?

- 의대 교과서, 예를 들어 해리슨 같은 것을 전부 다 만화로 만드는 것도 상상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려면 책도 한 열 권 정도로 늘어나야 하고, 정말 어려운 작업이 되겠지만, 해리슨을 만화로 보면 외우기도 쉽고 얼마나 좋겠는가. 또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등 임상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다루는 만화도 만들고 싶다. 하지만 현재 나의 주업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위탁과제로 맡긴 인체의 연속절단면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의학만화를 그리는 것은 내 나이 한 50세 이후부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해부학 만화책을 출판하는 일이 급선무다.

인터뷰 내내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짚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성의껏 답해주는 정민석 교수를 바라보며, 전국의 의대생들이 만화로 된 해리슨을 들여다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보았다.

곽나순 기자
사진 김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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